15세기 조선,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문자를 모르는 현실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한자는 너무 어려워서 평민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시도였습니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죠.
귀족들, 특히 집현전의 일부 학자들은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최만리는 "우리나라는 조종 때부터 내려오는 문자가 있는데, 지금 새로 언문을 만들어 쓴다면 중국에서 우리를 야만국으로 여길 것"이라고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비밀리에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과 밤낮으로 연구한 끝에, 마침내 1443년 훈민정음을 완성했습니다.
3년간의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 음력 9월 10일, 훈민정음이 정식으로 반포되었습니다. 이 날이 바로 오늘날 한글날의 기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