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10채와 바꾼 책 한 권 - 간송과 훈민정음 해례본

The Book Traded for 10 Houses - Kansong and the Hunminjeongeum Haerye
"이런 보물은 제값을 치러야 합니다."
1940년, 한 수집가가 낡은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지금 돈으로 30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그가 지킨 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한글의 정통성이었습니다.
1. 1940년, 세기의 거래 (The Deal of the Century)
1940년 여름, 일제강점기의 어둠이 짙어가던 때였습니다.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Kansong Jeon Hyeong-pil)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경북 안동의 한 고택에서 전설 속의 책 『훈민정음 해례본(Haerye)』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발견 당시의 상태
그러나 책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표지가 찢겨 나가고, 앞부분 2장이 소실된 채였습니다. 500년 가까운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흔적이었습니다. (훗날 학자들은 『세종실록』에 수록된 내용을 참고하여 안평대군체로 소실된 부분을 복원합니다.)
세기의 거래
소유주 이용준은 자신의 스승인 김태준(국문학자)을 통해 간송에게 매각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제시한 가격은 1,000원. 당시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이었습니다.
하지만 간송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제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는 1,000원이 아닌 10,000원을 지불했습니다. 기와집 10채, 현재 가치로 약 3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었습니다. 중개를 맡은 김태준에게도 수고비로 1,000원을 별도로 건넸습니다. 총 11,000원. 자본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화재에 대한 경외심이 담긴 거래였습니다.
그는 돈으로 책을 산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산 것입니다.
2. 전쟁 속의 오동나무 상자 (The Wooden Box in War)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서울을 떠나 급히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간송은 자신이 수집한 수만 점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만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가슴에 품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 낮에는 품에 안고 걷고,
- 밤에는 상자를 베개 삼아 베고 잤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이 책만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다른 보물들은 잃어버리거나 훼손되었지만, 그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해례본은 전쟁의 화마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 빛을 보다
광복 후, 간송은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초청하여 해례본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영인본(복사본)을 제작해 학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이 배포는 한글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보물을 혼자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학문과 민족을 위해 나누었습니다.
3.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The Missing Link)
만약 해례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발견 전의 억측들
1940년 이전까지, 한글의 창제 원리에 대해 온갖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특히 일본 학자들은 한글을 폄하하기에 혈안이었습니다.
- 창살 상형설: "세종이 화장실 창살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
- 몽골 문자 모방설: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베낀 것이다."
- 인도 문자 모방설: "범어(Sanskrit)를 모방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한글을 '독창적이지 않은 모방품'으로 격하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습니다.
해례본의 증명
그러나 해례본의 발견으로 모든 억측은 사라졌습니다. 책 속에 담긴 '제자해(Principle of Design)'가 한글이 발음 기관을 본뜬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임을 완벽하게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해례본은 한글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의 '설계도'이자 '특허 명세서'입니다. 진화론에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되면 모든 의문이 풀리듯, 해례본의 발견으로 한글 창제의 모든 원리가 명확해졌습니다.
이 책 한 권 덕분에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4.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간송 전형필은 단순한 부유한 수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문화적 독립운동'에 쓴 선각자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흘러나가던 시대에 그는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사들였습니다. 해례본뿐 아니라 고려청자, 겸재 정선의 그림 등 수많은 국보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대신, 미술관을 세워 국민과 나누었습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의 사회 환원을 넘어, 민족의 정신을 지킨 문화 수호자였습니다.
마무리 (Closing)
간송 전형필이 지킨 것은 낡은 종이 뭉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를 지켰습니다. 한글을 쓸 때마다 우리는 세종대왕의 지혜뿐만 아니라, 그것을 목숨 걸고 지켜낸 수호자들의 용기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 자료(Sources):
- 간송미술관 (Kansong Art Museum)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
- 세종실록 (The Annals of King Se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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