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지킨 우리말 - 말모이 작전과 조선어학회

한글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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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5일 오후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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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Malmoe#조선어학회#KoreanLanguageSociety#독립운동#IndependenceMovement#이윤재#한징#서울역#집단지성#박영옥#정태진

Protecting Our Language with Our Lives - Operation Mal-Mo-E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 주시경

나라를 잃은 암흑기, 총칼 대신 펜을 들고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 조작된 내란죄: 조선어학회 사건 (The Fabricated Rebellion)

 

1942년 10월,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영옥(Park Yeong-ok)이 기차 안에서 친구와 한국말로 대화하다 일본 경찰에 적발되었습니다. 사소해 보였던 이 사건은 끔찍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경찰은 여학생을 심문하며 배후를 캐냈고, "정태진(Jeong Tae-jin) 선생님에게 한글을 배웠다"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33명의 학자와 후원자를 체포했습니다.

 

혐의는 '내란죄(Insurrection)'였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것은 민족 정신을 고취하여 독립을 꾀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 이윤재(Lee Yun-jae, 56세): 1943년 12월 8일, 함흥 형무소에서 가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
  • 한징(Han Jing, 59세): 1944년 2월 22일, 옥중에서 고문으로 순국. 그는 일제 형사에게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쓰는 게 무슨 죄냐"고 항변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독립군처럼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말(Language)'이라는 민족의 영혼을 지키다 산화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는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말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소설이 아닌, 우리 역사의 실제였습니다.

 


 

2. 시골말을 캐어오라! (Gather the Dialects!)

 

이들이 목숨 걸고 만들려던 것은 [조선말 큰사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이 사라질 위기에서 사전을 만드는 것은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1929년, 조선어학회는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사투리와 어휘를 수집하기 위해 대중의 참여를 호소한 것입니다.

 

1935년, 잡지 [한글]에는 절박한 호소문이 실렸습니다.

 

"시골말을 캐어오라!"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각 지방 방언을 수집하기 위해, 학생 여러분의 방학을 이용하여 시골말을 모으고자 합니다. 이미 수집된 것이 만여 점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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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By Jocelyndurrey - 자작,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5750070

 

전국의 학생, 교사, 지식인들이 이 '말모이(Mal-Mo-E)' 작전의 비밀 요원이 되었습니다. 방학 때 고향으로 내려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는 옛말과 사투리를 받아 적어 학회로 보냈습니다.

 

오늘날의 위키피디아(Wikipedia)를 생각해보십시오. 전문가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모아 백과사전을 만들었습니다. 말모이 작전은 그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시초였습니다. 엘리트 학자만의 사업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민중들이 한 글자 한 글자 모아 만든 우리말의 보물창고였습니다.

 

그들이 보낸 수만 장의 편지는 단순한 단어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아직 조선 사람이다"라는 무언의 외침이었습니다.

 


 

3. 서울역 창고의 기적 (The Miracle at Seoul Station)

 

1942년 사건 당시, 일제는 13년 동안 피땀으로 모은 사전 원고 2만 6,500여 장을 모두 압수했습니다. 원고는 증거물로 재판소에 넘겨졌다가, 전쟁 통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왔지만 학자들은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우리말의 보물지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45년 9월 8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경성역(현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역장이 창고 정리를 하던 중, '조선 고등법원' 앞으로 된 낡은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상자 뚜껑을 열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고 뭉치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던 2만 6,500여 장의 종이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만약 이 원고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해방 후에도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을 갖지 못했을 것이며, 수많은 고유어가 영원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 원고가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완벽한 국어사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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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마무리 (Closing)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지만, 그것을 지켜낸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었습니다. 기차에서 한국말을 하다 끌려간 여학생 박영옥, 고향에서 할머니의 사투리를 적어 보낸 학생들, 그리고 차디찬 감옥에서 숨을 거둔 학자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배어 있습니다.

 


 

참고 자료(Sources):

  • 독립기념관 (조선어학회 사건 판결문) - search.i815.or.kr
  • 한글학회 (사전 편찬 약사) - hangeul.or.kr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db.history.go.kr
  • 영화 '말모이' (Mal-Mo-E: The Secret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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